익산 미륵사지 석탑 가다

2022. 1. 5. 23:13찍고 즐기고

익산 미륵사지 석탑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97번지

익산미륵사지 석탑은 백제시대 미륵사에 세워진
3기의 탑 가운데 서쪽에 있는 석탑이다.
국내에 현존하는 최고(最古)·최대(最大)의 석탑으로서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11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201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백제역사지구의
일부이기도 하다.

원거리로 여행을 간 날은 항상 비가 왔다.
게다가 국립익산박물관은 공사중이어서 관람조차
할 수 없었다.
비가 오는날에 박물관 내부 관람도 안되니
정말 최악의 상황이었다.
빗줄기가 처음에는 약하더니 점점 굵어져갔다.
빗방울에 시야가 흐려서 미륵사지 석탑을 못보는 것 아닌가 걱정했지만 비가 오는날도 외부는 개방이 되어 우산을 쓰고 볼 수 있었고,
비가 오는 날이었지만 해설사님이 우산을 쓰고 나오셔서
친절하게 설명도 해주셨다.
문제는 빗소리와 우산에 가려져 해설사님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는 거였다.


해설사님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아서 미륵사지를 다녀온 후
역사적인 부분에 대해서 내용을 찾아보았다.

미륵사는 무왕(재위 600-641)대에 창건된 백제 최대의 사찰로 알려져 있으며, 1탑 1금당(金堂)이던 백제의 일반적
가람 배치와는 달리 3탑 3금당으로 독특하게 배치하여
중금당(中金堂)의 목탑을 중심으로 동금당(東金堂)과
서금당(西金堂) 앞에 각각 석탑을 세웠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미륵사가 폐사(廢寺)된 뒤 3기의 탑 가운데
목탑과 동금당의 석탑은 소실되었는데,
현재의 동쪽 석탑은 미륵사지 석탑의 발굴 결과를 바탕으로 1993년에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서금당의 석탑은 국내에 현존하는 석탑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창건 시기가 명확하게 밝혀진 석탑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건립되었다.
원래 9층이었으나 미륵사가 폐사된 뒤 원형이 크게 훼손되어 6층까지만 남게 되었고,
일제 강점기인 1915년에 일본인들이 무너진 부분을
콘크리트로 덧씌운 채로 전해졌다.
1998년 구조 안전진단을 시행하여 이듬해에 해체 및 보수를 결정한 뒤 2001년 10월부터 본격적인 해체보수정비 작업을 시작하였고, 최종 개방시기는 2019년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무너진 부분을 대충 콘크리트로 덧씌운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자기들 유산이었으면 그렇게 엉망으로 보수를 하였을까?
보수라는 이름으로 파괴를 한것은 아닌지..


미륵사의 가람배치는 많이 독특하다.
목탑을 중심으로 동금당과 서금당앞에 석탑을 세웠다고 하는데 지금 현재 목탑은 없고 발굴된 유적으로 짐작될 뿐이다.
미륵사지 석탑은 돌로 불탑을 만든 최초의 탑이며
그 모양이 백제 정림사지 오층석탑(국보제9호)와
형태가 닮아있다.


석탑앞에 서보니 그 웅장함이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미륵사가 소실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사찰중에서는
가장 뛰어난 경관과 웅장함을 가지지 않았을까 싶다.
해설사님이 설명을 들으며 미륵사지 석탑을 둘러보았는데
2009년 1월 석탑 해체수리 중에 2층 탑신 내부 심주에서
완전한 형태의 사리장 엄구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기해년명 탑지를 통해서 당시 왕비가 639년에 탑을
건립하면서 사리를 보안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1998년부터 20년에 걸친 복원 작업은 남아있던 6층까지의 원형을 보존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는데,
6층 이상은 원래의 모습을 추정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사료가 남아 있지 않아서 더이상 복원이 어려웠다.
6층까지밖에 보이지 않지만 동탑과 비율로 봤을때
실제로는 9층 석탑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륵사지 동탑은 복원이 끝나서 안에 들어갈 수도 있다고 하는데 비가 와서 멀리서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날씨가 좋았다면, 박물관 개장만 했다면 미륵사지석탑에 대해서 좀더 알수 있었을텐데
많이 아쉬웠고 아쉬워서 또 방문을 기대하고 있다.